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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의 흔적

먹는다는 것의 의미: 임순례 감독의 <리틀 포레스트>

2021. 6. 1.

작성일자: 2019.06.06 (4th grade)

먹방 전성시대와 나의 작은 숲, <리틀 포레스트>

1. 대한민국은 먹방 열풍중
현재 대한민국 방송계는 먹는 방송, 이른바 ‘먹방’ 이 대세가 된지 오래이다. 아프리카 TV라는 인터넷 방송 플랫폼에서 처음 등장한 먹방 콘텐츠는 유튜브, 케이블 방송을 거쳐 공중파 방송에서도 주류 콘텐츠로 자리 잡았다. 사실 이미 오래 전부터 전국의 맛집을 소개하거나 음식을 주제로 한 요리 프로그램은 시청자와 제작자들에게 꾸준히 사랑 받아왔다. 하지만 새롭게 등장한 이 먹방은 기존의 요리 콘텐츠와 본질적인 주제가 다르다. 바로 먹는 행위에 집중한다는 것이다.

인터넷 방송에서의 전통적인 먹방은 많은 양의 음식을 혼자서 한 번에 모두 먹어 치우는 형식이었다. 과거로 치면 푸드 파이터로 불려질 만한 대식가들이 주로 먹방을 진행하였으며 이들은 1인 방송을 진행하는 일반인 BJ이다. 또한 콘텐츠의 수위조절이 비교적 자유로운 인터넷 방송의 이점을 활용하여 가학적이기까지 한 (음식을 몸에 뿌리거나 던지는 등) 행위로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었고 이는 푸드 포르노로 대변되기도 했다.

케이블〮공중파의 경우는 어떨까. 기존의 요리, 맛집 프로그램과 융합된 형태의 먹방이 인기를 끌었다. 예능 프로그램 <맛있는 녀석들> 은 맛집 소개와 더불어 대식가로 잘 알려져 있는 뚱뚱한 개그맨, 개그우먼 들이 먹방을 진행한다. 이는 익숙한 맛집 소개 프로그램 형식과 친숙한 연예인들을 먹방에 잘 녹여낸 케이스이다. 드라마 <식샤를 합시다> 는 아예 ‘1인 가구 먹방 드라마’ 를 표방한다. 에피소드마다 두 개 이상의 맛집 혹은 음식들을 소개하며 등장인물이 식사하는 장면을 비중 있게 다룬다. 혼자 식당에 들어가 밥 먹기 조차 어려워 하는 주인공을 비롯한 인물들의 1인 가구의 애환, 이웃과의 단절 등을 식사라는 주제를 통해 풀어나간다. 그 밖에도 <삼시세끼>, <냉장고를 부탁해> 등 쿡방과 먹방의 결합 또한 성공적이었다. 프로그램 편성 개수로만 판단해도 먹방은 최 전성시대를 누리고 있음이 분명하고 실제로 직〮간접적으로 먹방 콘텐츠를 다루지 않은 방송사가 없을 정도이다.

2. 먹방 열풍의 원인
먹는 것은 중요하다. 삶을 영위하게 해주고 미각적 즐거움을 충족시킨다. 의식주 중에서도 가장 인간의 본능과 맞닿아 있는 것이 바로 ‘식’ 이다. 또한 음식 문화는 시대적〮지리적 문명과 사회를 그대로 반영한다. 그렇다면 바로 지금 이 시기에 한국에서 먹방 콘텐츠가 독보적인 인기를 끄는 이유는 무엇일까.

미디어는 사람들의 욕구를 전시하고, 확산시키고, 충족시키는 기능을 한다. <우리 결혼했어요> 와 같은 리얼리티 결혼 예능 프로그램은 상대방과의 교류, 이해, 연애의 과정을 단축시켜 드라마와는 또 다른 결혼에 대한 만족감을 충족시켜 주었다. 그 외 다양한 드라마, 예능, 다큐멘터리 등을 통해 시청자들은 삶의 욕구를 대리만족 할 수 있었다.

먹방은 그 중 먹는 욕구를 충족시켜 준다. 거꾸로 얘기하면 먹는 욕구가 충족되지 않기 때문에 먹방을 본다. 다른 사람이 먹는 것을 지켜봄으로써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이다. 자신이 직접 먹는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이유는 고열량 음식을 선뜻 먹지 못하는 강박적 다이어트 때문일 수도, 비싼 음식을 맘껏 먹지 못하는 금전적인 어려움 때문일 수도, 일상에 지친 나머지 식사를 준비하고 끼니를 제때 먹을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없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는 모두 우리가 겪고 있는 현대 사회의 문제점들이다. 하지만 먹방은 욕구를 단발적으로 충족시킬 뿐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는다.

3. <리틀 포레스트>와 혜원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주인공 혜원 역시 먹는 욕구가 충족되지 않는 20대 청년이다. 임용 시험에 떨어지고 도시 생활에 지친 혜원은 시골 고향 집으로 내려온다. 고향에서 만난 친구 은숙을 보고 반가워하지만 아무도 자신이 이곳에 내려온 것을 몰랐으면 하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근처에 사는 고모에게도 자신이 왔다는 사실을 미리 알리지 않았다. 살다 보면 이런 순간이 있다. 실패를 겪은 후 자신이 한없이 작아 보이고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기에는 자존심이 상해 모든 것을 버리고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숨고 싶을 때. 혜원은 아마 그런 순간에 시골집에 내려온 것으로 보인다.

 혜원은 아픈 곳을 찌르는 친구 은숙에게 배가 고파서 내려왔다고 말한다. 그 말이 진심인 듯 혜원은 매 끼니를 부지런히 재료 손질하고 정성을 들여 요리한 후 잘 차려먹는 모습을 보인다. 요리하는 장면과 먹는 장면은 이 영화의 전부라고 할 만큼 큰 비중을 차지한다. 도시에서 혜원은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중간 중간 삼각김밥으로 끼니를 때우고 집에 돌아와서는 상한 편의점 도시락을 먹다가 그만 뱉어버린다. 그런 혜원을 가장 먼저 위로해 준건 직접 만든 따뜻한 배춧국 한 그릇이다.

혜원은 요리를 해먹을 때 마다 엄마를 떠올린다. 음식에는 엄마와의 시간, 추억, 엄마의 목소리가 담겨 있다. 엄마는 혜원이 수능을 치른 뒤 얼마 지나지 않아 편지만을 남긴 채 떠났으며 이제까지 한 번도 연락을 하지 않았다. 엄마는 오꼬노미야끼를 양배추 빈대떡이라고 부르며 자신이 만들어낸 요리라고 했었다. 엄마는 이렇게 종종 거짓말을 하긴 했지만 어린 혜원에게 엄마는 항상 예측불허이고 언제나 새로운 것을 시도하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혜원은 엄마를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

어린 시절 잠시 왕따를 당했었던 혜원에게 엄마는 그런 애들은 그냥 무시하면 된다고 위로하며 크림 브륄레를 만들어 주었다. 혜원이 자신의 편을 들어주지 않는다며 화를 낸 은숙과 화해하기 위해 혜원도 친구에게 크림 브륄레를 선물한다. 엄마는 달콤한 음식으로 어린 혜원의 기분을 좋게 하던 마법사였다. 그래서 혜원도 엄마에게 배운 대로 은숙의 기분을 좋게 만드는 데 성공한다.

혜원도 도시에서 누군가를 위해 정성스레 요리하던 때가 있었다. 남자친구는 그런 혜원을 이해하지 못했고 부담스러워 했다. 도시에서는 재료를 준비하고 식사를 함께 하는 것이 어색하고 고리타분한 행위인 것이다. 그 뒤로 혜원은 남자친구에게 도시락을 싸준 일이 없다고 말한다. 재하는 퇴사하면서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고향에 내려오게 된 이야기를 한다. 다른 사람이 결정하는 인생을 살기 싫어서였다고 말한다. 재하와의 대화 후 혜원은 비로소 남자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시험에 합격한 것을 축하한다고 말한다. 고향에 내려온 직후, 남자친구와의 통화를 피하며 스스로 자존심을 굽히지 못하고 어렵게 산다고 자조하던 혜원은 이제야 고개를 들고 남자친구를 진심으로 축하해 줄 수 있다.

시골의 가을은 할 일이 많다. 고추도 따고 깨도 털고 밤도 줍고.. 혜원은 자신이 할 일이 많아 재하를 못 도와준다고 너스레를 떤다. 그런 혜원에게 재하는 바쁘게 산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건 도시에서도 바쁘게 살았지만 무엇 하나 마음처럼 되지 않았던 것처럼 도시에서의 실패를 견디지 못해 고향으로 도망치듯 돌아와 바쁘게 농사일을 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로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누군가 말했듯 도망쳐서 도착한 곳에 낙원은 없다.

가을비에 벼는 꺾여버렸고 재하의 사과 과수원은 태풍을 맞아 사과를 모두 못쓰게 되어 버렸다. 곶감을 자주 주물러줘야 겨울에 맛있는 곶감을 먹을 수 있다는 엄마의 말을 떠올리며 혜원은 엄마가 떠났을 때는 이해하지 못했던 엄마의 편지를 읽는다. 엄마는 집을 떠나 긴 여행의 출발선에 선 혜원이 언젠가 힘든 일을 겪고 있을 때 고향집의 흙 냄새와 바람과 햇볕을 떠올리며 금새 털고 일어날 수 있다고 믿는다. 그제서야 혜원은 엄마를 이해할 수 있는 것 같다.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것은 태풍을 이겨낸 사과처럼 시간이 지나고 이런 저런 풍파를 겪은 후에야 맛볼 수 있는 선물과도 같다. 혜원은 엄마를 이해한 것이 아니라 인정한 것인지도 모른다. 어려서는 머리로 엄마를 이해하려 했지만 이제는 마음으로 엄마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인정한 것이다.

엄마에게는 자연과 요리, 혜원에 대한 사랑이 리틀 포레스트였다. 혜원 역시 자신만의 리틀 포레스트를 찾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눈이 내리는 겨울의 첫 날, 떠날 채비를 한다. 냉장고 문에는 엄마에게 자신만의 감자빵 레시피를 적은 편지를 남긴 채. 마치 처음 고향집에 돌아왔을 때처럼 친구들에게 강아지와 닭을 잘 부탁한다는 쪽지만을 남기고 떠난다.

혜원은 리틀 포레스트를 찾았을까?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대책을 세웠을까? 혜원에게는 이미 리틀 포레스트가 있다. 바로 엄마가 남기고 간 고향집이다. 엄마는 혜원을 키우면서 마치 먼 미래에 혜원이 이 집을 떠난 후 언제든지 돌아올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이 리틀 포레스트를 가꿔왔던 것이다. 그래서 혜원은 몇 번이고 실패해도 된다.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그만의 리틀 포레스트가 있기 때문에.

재하는 혜원이 곧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혜원이 양파 모종을 더 이상 옮겨 심지 않고 단단히 심는 ‘아주 심기’ 를 하는 중이라고. 아주 심어 겨울을 이겨낸 양파는 봄 양파보다 더 단단하고 맛이 좋다. 혜원은 재하의 말처럼 겨울을 지내고 봄이 되자 고향집으로 돌아와 잘 자란 양파 요리를 해 먹는다. 겨울을 잘 이겨낸 맛있는 양파처럼 혜원도 더 단단해지고 성장해서 돌아온 것이다. 혜원은 열린 문을 보며 엄마가 돌아온 것을 알아채고 미소 짓는다.

4. 원작과의 비교
임순례 감독의 <리틀 포레스트> 는 동명의 일본 만화와 영화를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일본 영화 <리틀 포레스트> 가 일본 영화만의 감성이 돋보이는 아름다운 영상미로 유명했던 작품이어서 원작의 팬들에게는 익숙하고 기대가 컸을 것이다. 원작 만화를 기반으로 각각 일본과 한국의 영화가 어떻게 매체 변용되었는지 살펴본다.

만화 『리틀 포레스트』 - 맛있는 요리는 대자연 생태계의 선물이다
만화 『리틀 포레스트』 는 농촌만화의 걸작으로 불리는 이가라시 다이스케 작가의 작품이다. 주인공 이치코가 시골의 사계절을 배경으로 가족, 친구, 이웃과 함께 매일 아침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 먹는 과정 속에서 소소한 즐거움, 깨달음을 얻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만화 속 스토리는 작가가 한때 시골에서 농사 짓고 음식을 해 먹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한다. 시골의 자연을 아름답게 묘사하고 요리 과정을 섬세하게 그려내어 대상에 대한 애정이 느껴진다. 작가의 자급자족 시골 생활 경험과 이해가 없었다면 이는 어려웠을 것이다.

특히 이 만화가 인기를 끌었던 이유는 다양한 음식에 대한 소개와 상세한 요리 과정이 마치 요리 책을 보는 듯한 느낌을 주었기 때문이다. 주인공을 따라 직접 요리를 재현해 낼 수 있을 정도로 레시피가 상세하게 적혀 있어 실제로 만화를 보고 음식을 만들었다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였다. 또한 구불구불한 펜화는 거칠지만 생동감이 넘쳐 주인공이 만드는 요리, 자연과 동식물에서 자연의 활력이 느껴진다.

만화의 중심은 자연이다. 그림 속에서 인물은 배경에 녹아 들어 튀지 않고 오히려 배경 (자연) 의 일부가 되어 버린다. 주인공은 자연을 지배하려고 하지 않으며 다만 자연이 주는 선물을 감사히 받아들일 뿐이다. 자연 역시 인간을 온화하게 품어주는 거대한 존재감을 가진다. 이치코는 도시로 떠났다가 결혼 후 다시 마을로 돌아오는데 이 마을이 바로 ‘리틀 포레스트’ 이다. 자연은 순환 생태계이다. 작은 숲 속에서 밭을 가꾸고 농작물을 먹고 다시 거두어 들이는 행위를 통해 주인공이 숲의 일부가 된 것이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고 이를 지배하거나 파괴할 수 없다는 작가의 생태주의적 면모를 알 수 있다.

한국과 일본의 영화 <리틀 포레스트> - 같은 밀가루로 어떤 요리를 만들었는가?
일본의 <리틀 포레스트>는 원작 만화를 그대로 이어 받아 재료와 요리 과정에 대한 에피소드, 만화 속 대사 등을 충실히 재현해냈다. 그리고 일본 영화 특유의 정제되고 고요한 감정이 아름다운 자연을 통해 전해진다. 분명 모리 준이치 감독은 이가라시 다이스케 작가와 같은 일본인이기 때문에 그 정서를 영화로 표현함에 있어서 보다 더 자연스러웠을 것이다.

만화가 이야기의 시작과 끝의 시간적 흐름이 다소 애매하며 각 에피소드들은 뚜렷한 계절 색을 드러내지 않는 것과 달리 두 영화는 시간의 흐름에 따른 4계절의 변화를 명확하게 구분하여 묘사한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특히 임순례 감독은 겨울에 고향집에 내려온 혜원의 이야기를 시작하여 그 해 겨울에 혜원이 처음 내려왔을 때처럼 도시로 떠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혜원이 다시 돌아온 때는 봄이다. 봄은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고 혜원이 보다 성숙해져 자신의 삶을 새롭게 꾸려나갈 것임을 뜻한다. 이렇듯 자연 생태계의 순환적 시간의 흐름을 4계절을 통해 효과적으로 묘사한다. 이를 위해 봄의 푸르른 잎사귀, 겨울의 흰 눈이 쌓인 나뭇가지 등의 이미지를 중간 중간 삽입하여 계절감을 보여준다. 만화 속 자연을 묘사한 펜화의 생동감을 영화에서도 재현하려는 감독의 시도이다.

세 작품은 표면적인 주인공과 어머니와의 과거, 친구들간의 관계는 동일하게 가져온다. 하지만 모두 다른 결말을 보이는데 이는 작품이 전달하고자 하는 핵심 주제가 다르다는 의미이다. 만화에서는 이치코가 도시로 돌아갔다가 결혼을 한 후 다시 마을로 돌아온다. 그리고 마을 구성원이자 자연의 일부가 되어 살아간다. 일본 영화에서도 만화와 동일하게 주인공이 결혼 후 마을로 돌아오는데 눈에 띄는 장면이 바로 <작은 숲 속의 봄 수확제> 의 카구라 연무 장면이다. 카구라는 신에게 제사를 올리는 의식의 전통 무용이다. 자연에 감사하며 자신을 바치며 살아가겠다는 주인공의 의지를 표명한다. 한국 영화에서는 결말에 혜원이 겨울을 지나 봄에 다시 고향집에 돌아왔으며 혜원의 미소로 엄마가 돌아온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남들이 결정하는 삶을 살기 싫다’ 는 재하의 말처럼 혜원 역시 자신의 삶에 대한 태도에서 변화를 이끌어냈고 성인으로써 엄마를 이해하고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임순례의 <리틀 포레스트> 는 추운 겨울의 방황을 끝낸 혜원의 성장 드라마이다.

임순례 감독은 “요리보다는 인물들의 이야기에 포커스를 두고 만들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잘 드러날 수 있도록 노력했다.” 라고 밝힌 바 있다. 감독이 중점을 둔 인물간의 관계 묘사 역시 한국과 일본 작품의 큰 차이점이다. 일본 만화와 영화는 요리를 중심으로 에피소드가 전개되고 음식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따라서 만들 수 있을 정도로 상세히 보여준다. 그에 반면 엄마나 남자친구와의 과거는 주인공의 회상과 나레이션으로 짧게 소개된다. 또한 두 명의 친구들(여자, 남자 각 1명)과 음식을 나눠먹고 친구가 직장상사 험담을 하는 에피소드 등 표면적인 틀은 유사하지만 혜원이 결정적으로 엄마에게 답장을 쓰거나 남자친구에게 전화를 할 수 있게 했던 재하와 같은 정서적인 지지를 해주지는 않는다. 그리고 한국 영화에서 혜원은 요리할 때마다 엄마와의 추억을 떠올린다. 종국에는 혜원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엄마를 이해하고 재회를 암시하는 장면까지 묘사된다. 이야기의 중심 (혜원의 성장 과정)에 엄마와의 관계를 빼 놓을 수 없는 것이다.

5. 소확행과 나의 ‘리틀 포레스트’
세 작품 모두 결말과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의 방향은 다르지만 리틀 포레스트의 의미에 있어서 같은 노선을 가진다. 바로 리틀 포레스트는 내가 온전히 나로 존재할 수 있는 공간이다. 각각 자연의 일부로서,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홀로서기에 성공한 나로서 주인공들은 리틀 포레스트로 돌아갔다.

주인공은 무엇을 먹을지 고심하고 재료를 손질하며 심지어는 몇 날 며칠의 시간이 걸리도록 요리하고 스스로를 위해 밥상을 차려 음식을 비워낸다. 마치 이 과정은 의식과도 같다. 누군가 말하기를 산다는 것은 어제의 나를 한 명 키우는 것과 같다고 한다. 어제보다 오늘의 내가 하루라도 더 살았기에 어제의 나를 잘 구슬려 가며 뒷바라지 하는 것이다. 의식주 중 가장 인간의 본능과 맞닿아 있는 먹고 산다는 것이 이렇게 고된 일이다. 주인공에게 음식이란 추억이다. 그 속에 시간이 있고 친구들과 엄마가 있다. 시간과 공을 들여 요리하기에 맛있는 음식을 맛보고 추억을 되돌아 볼 수 있다.

소확행의 뜻은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다. 즉각적이고 결과가 바로 보장되는 단발적인 행복이다. 소확행을 추구하는 사람은 먹방을 본다. 자신이 먹지 못하는 고열량의 비싼 음식들을 먹는 5분~10분 남짓한 영상 속의 사람들을 보며 대리만족을 느낄지도 모른다. 하지만 허기는 채워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소소하지 않은 행복을 찾아야 한다. 크고 확실한 행복을 누릴 권리가 있다. 비록 어제의 내가 저지른 일의 뒷바라지를 하고 오늘의 내 컨디션과 기분을 맞춰줘 가며 사는 게 힘들지라도, 다른 사람이 행복이라고 말하는 기준에 휘둘리지 말고 나 자신에게 집중해야 한다. 소소한 자극에 안주하지 말고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여 진짜 행복을 찾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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